우리가 와인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이유

프랑스 와인회사 루이 라뚜르 Louis Latour 판매 임원을 인터뷰 했다. 그는 세일즈맨 답게 말이 많았다. “와인은 문화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등 다소 상투적인 말도 포함해서. 영어라서 지루하게 느껴진건 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말도 있었다. “와인은 그냥 와인일 뿐” 이라나. 와인회사 임원이? 이런 말을? 공부하지 말고 즐기자는 문맥이었는데, 의외였다.

그는 사진에도 적극적이었다. “안경을 벗을까? 자켓은 채울까, 풀까? 타이는 어쩌지?” 등을 연신 물어왔다. 난 늘 그렇듯 “일단 찍어 보고 결정할까?” 가볍게 넘겼더니, 그는 “우리 와인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친밀한 느낌을 주고 싶다”며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단순 비쥬얼보다는 테마가 우선이다.

우선 현장은 이러했다.

어둡지만 근사했다.  붉은 패턴 테이블, 벽난로와 포스터, 책장과 커튼 고전적 분위기가 와인과 어울렸다. 대신 셔터는 1/3초(ISO100 f/4)까지 늦춰져야 실내 분위기가 겨우 살아났다.

카메라를 놓고 구도를 잡았다. 이런 구도가 가능해 보였다.

좌하단에는 와인병. 우상단엔 조명이 자리를 하고. 주인공인 인물은 중앙부에 위치하는 구도다. 테이블 선과 액자 선이 인물쪽으로 모여들어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노렸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계획대로 안 됐다.

너무 좁았다. 인물 좌측에 조명을 두자니(마치 샹들리에에서 비치는 빛처럼 보이게), 여유 공간이 없었다. 조명이 화각 안에 들어왔다.이리저리 씨름을 해봤지만 조명을 둘 곳이 없었다. (이때만 해도 샹들리에를 잘라낼 생각을 못 했다. 감히.)

조명을 인물 오른쪽으로 옮겨 새 구도를 짜보았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처럼 보이도록 해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인물 뒤통수 바로 뒤에 샹들리에가 걸렸다. 보통 머리 뒤로 직선이 걸려도 산만해보이는데 조명까지 걸리면 영 파이다. (사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건만. 메모리 부족으로 현장에서 지워버졌다 ㅜㅜ).

다시 세번째 세팅. 인물을 테이블 맞은편쪽으로 옮겼다. (테이블 선이 집중되는 효과도 포기했고, 샹들리에가 잘리는 것도 감수했다.)

조명 배치는 이랬다.

인물 왼쪽에 메인 조명을 둬서, 샹들리에 빛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와인 위쪽으로 큰 옥타 조명을 줬다. 보조 조명이다. 와인병과 인물 섀도우가 너무 어둡지 않게 올려주는 빛이다. 와인 병에선 f/4정도 밝기가 됐고, 얼굴에서는 f/2.8 정도 밝기가 나왔다. 인물 메인 조명이 f4이니, 대략 1:2 정도 대비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실제는 얼굴이 너무 밝게 나왔다. 왜 그러지?

고민… 노출은 잘 맞췄는데? …샹들리에 때문이었다. 실내를 밝히려고 한껏 노출을 열었더니, 플래시와 자연광이 더해져 너무 밝아진 거다. 어쩌지? 플래시를 낮춰? 그럼 샹들리에 때문에 얼굴이 노랗게 나올텐데? 아니면, 셔터를 조여? 샹들리에 빛은는 줄겠지만, 동시에 방이 너무 어두워진다. 고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쉬웠다. 인물을 앞으로 조금 당겼다. 이마에 내리던 샹들리에 빛이 머리 뒤통수로 비치게 했다.

손쉬운 해결책이지만, 막상 현장에선 꽤 당황된다. 경험이 쌓일수록 문제 푸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신감도 붙는다.

OK. 기본 라이팅은 됐다. 그런데 여전히 허전하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살지 않는다. 이 정도 사진 찍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 인물은 괜찮은데, 방이 심심하다.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까? 셔터를 늦춰 실내를 밝혀 보았지만 여전히 밋밋했다. 조명을 더해볼까? 하니컴그리드를 달아서 책장에 살짝 비추면 어떨까. 마치 창밖의 빛이 비치는 것처럼. 그런데 하니컴이 현장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장착했다. 우산은 빛을 넓게 뿌린다. 방이 전체적으로 밝아지기 십상이다. 책장 쪽으로만 뿌리려면 방향을 확 틀어줘 일부만 새나오게 해야한다. 다이어그램에 나온 것처럼 창문 쪽에 위치시키고, 고개를 거의 창 밖쪽으로 틀었다. 아래 사진에서도 우산 끄트머리를 살짝 볼 수 있다.

나아졌다. 훨 생기가 돈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여기에 CTO 젤(오렌지 셀로판지)을 더해 좀더 따스한 빛으로 바꿨다.

Good. 자연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럽다. 모델을 모시고, 본 촬영에 들어갔다.

와우! 느낌이 좋다. 걸작 느낌이다. ^^ 만약 백그라운드 조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한가?

어째 인물도 함께 죽는 느낌이다. 사실 이 사진을 찍을 때 기분도 그랬다. 왜? 배터리가 딱 떨어졌으니까. 스트로보 3개 중에 1개가 나가 버린 거다. 세팅 바꿔가며 테스트 샷만 죽어라 찍다가 사망하셨다. 전용 배터리라 여분도 없다. 딱 한 장 찍고 사망.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두 등으로 촬영해야 했다. ㅜㅜ 그런데 놀랍고 고맙게도, 그 한 장이 퍼펙트했다. 완벽했다, 포샵만 좀 하면.

포샵에선 우선 너무 어두운 부분(테이블 오른쪽 아래, 좌측 협탁)은 살려줬다. 와인도 손봤다. 와인이 너무 밝았다. 인물과 1:1 경쟁을 하고 있다. 원래 의도가 그랬다. 인물 만큼이나 와인을 부각시키려 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산만하다. 메인은 인물만 남겨두고, 와인은 보조 테마로 낮출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와인은 너무 평면적으로 보였다. 정면 상단에서 빛이 내려와 그림자가 없었다. 다른 사진을 들춰 보다 나은 와인을 찾았다. 메인등 없이, 상단 보조등만 살아있는 사진이 개중 나았다. 마치 오른쪽 창의 앞쪽 창문(가상의 창)에서 비치는 것처럼 빛의 방향성이 생겼다.

포샵 전후 차이를 좀 볼까? (사실 둘 다 1차 포샵은 한 거지만)


미세하지만 큰 차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디테일만 보면 미세하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독자의 눈이 어디로 흐르는가 또는 분산되는가를 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아예 촬영 때부터 보조등을 인물 위가 아닌 인물 오른쪽에 뒀으면 더 나았을 텐데 싶다. 사진에서 보이는 광원은 2개, 실내등과 창문. 스트로보를 둘 때도 자연광인양 구현하는 편이 낫다. 덜 인위적이고 자연스럽다. 조명에도 시나리오가 있다.

얼마전 한 선배가 페북에 올린 글을 봤다. “화려한 사진을 찍어내봐야 허전한 건 왜 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공감이 가는 주제다. 더구나 나처럼 인물이나 제품을 돋보이게 강조하는 사진가에겐, 다소 힘 빠지는 질문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하니까. 열심히 조명을 줘서 완성도 높은 사진이 나와도,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럼 난 왜 조명 사진에 천착하는 걸까. 사진은 사진일 뿐이데. 광고 사진이라도 하나 따 오려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서? 생각이 이어지는중이었다. 이날의 경험이 답이 될까? 사진에는 테마가 있고, 조명에도 시나리오가 있다. 조명사진. 그래서 의미있다. 그래서 재미나다. 와인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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