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촬영의 은밀한 비결

첫번째 컨셉은 이렇게 찍었다. 가볍게. 몸풀기로.

주 조명은 모델 옆에. 보조 조명은 카메라 뒤에.

두번째 촬영은 오늘의 메인, 속옷 촬영이다.

옷을 벗고 하는 촬영이라 긴장감이 돈다. 귀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긴장감은 아닐 수 있다. 그것보단 모델이 어색해할 수 있다는 뜻. 조명이나 포즈 보다는 현장 분위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조명을 크게 바꾸지 않고 우선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컨셉에 대해 많은 말을 하면서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촬영 결과가 나쁘지 않았지만, 썩 맘에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촬영장에선 이를 티내지 않고 계속 셔터를 눌렀다.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촬영을 멈추고 ‘뭐가 맘에 안드는 걸까’ 골똘히 생각에 빠지면 모델이 자신감을 잃는다. 모델이건 사진가건 자신감에 도취되야 또는 자신을 잊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 자격지심에 빠지면 그날 촬영은 끝이다.  ‘내 사진 실력은 아직 멀었어’라는 생각도 들지 않게 해야 한다. 너무 거부하는 것도 거꾸로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전에도 이러다 결국 잘 되더라’ 정도로 나는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적이 많았으니. 결국 실패의 경험, 극복의 경험이 내 힘이 되는 거다.

한동안 촬영을 하고 자연스레 조명을 바꿨다. 이번엔 탑조명. 머리 위에 메인 조명을 뒀다.

한결 마음에 들었다. 얼굴은 명암대비가 부드러워졌고, 몸에 드는 빛도 자연스럽게 어두워지고 있다.

모델 양 옆에는 흰색 대신 검정색 반사판을 대줬다. 벽에서 반사되는 빛을 차단하고 대비를 높이기 위해서다. 흰벽에서 반사되는 빛은 일종의 필라이트 역할을 하면서 섀도우 부분을 비춰준다. 섀도우가 밝아지면 전체 컨트라스트가 떨어지고 긴장감이 풀어진다. 자켓 왼팔 쪽을 보면 어둡게 떨어지는데, 검정 반사판의 영향이다.

메인 조명은 머리 바로 위에 있다. 조명 끝이 몇몇 사진에 잡힐 정도로 가깝다. 모델 위치 역시 중요하다. 조명 중앙 쪽에 서면 컨트라스트가 더 세지고, 조명 테두리쪽으로 나가면 부드러워진다. 조명 중앙에 섰을 때, 모델 앞면을 비추는 건 조명의 반쪽 뿐이다. 나머지 반쪽은 모델 뒤를 비추며 (모델 입장에선) 버려진다. 반면 모델이 조명 끝쪽 테두리에 서면, 조명 전체가 모델 앞쪽을 다 비춰준다. 조명이 2배로 커진 셈이다. 광원이 클수록 명암경계는 더 부드러워진다. 또 센터 쪽은 빛이 집중되는 부분이니  컨트라스트가 더 세고, 주변부는 완만하다.

그 밖에 눈에 캐치라이트가 잡히는지, 눈밑 그림자와 목 아래 그림자가 거슬리지는 않는지 등을 살피며, 조명과 모델 위치를 세밀하게 변형시켰다. 고개를 숙이는 것보단 살짝 드는 편이 낫다. 얼굴이 곱게 나온다. 그렇지만 고운 얼굴 따위 필요 없고, 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면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

배경도 입혀보았다.

또다른 컷에선 포토샵을 조금 더 했다. 커브로 색감과 대비를 조금 강하게 줬다. 암부에는 청색, 명부에는 노란색을 부각시켰다.

속옷 촬영의 성패는 결국 현장 분위기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모델이 풀이 죽지 않게, 사진가 자신도 흔들리지 않게 현장을 연출해야 한다. 아니 속옷 뿐 아니라 모든 촬영이 그럴 거다. 결국 자기 발에 걸려 쓰러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지만 머리 한쪽은 계속 조명을 분석해야 한다. 더 낫게 하려면 어찌 해야지? 티나지 않게 고민하는 사람이 결국 좋은 사진가가 아닐까? 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청난 당구 고수 얘기다. 보통 실력자들은 큣대로 길을 재거나 계산 하는데, 이 고수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그냥 눈으로 스윽 보도 툭 치는데 공이 기막히게 맞는단다. 예비동작도 없고, 고민의 흔적도 없다. 그래서 나중에 하수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칠 수 있냐고. 고수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고 발을 보여줬다. 양말 엄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남아나는 양말이 없단다. 공을 칠 때마다 엄지발가락을 꼼지락대며 길을 계산하기 때문에. 고수란 그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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