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등과 섞어 쓰기

현장에 도착하면 우선 배경부터 찾는다. 성패는 배경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촬영 장소는 화장품 헉슬리 본사. 보통 패션이나 뷰티 회사들은 사내에 근사한 쇼룸을 갖추고 있다. 다행이 헉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색 테이블과 벽에 화장품이 깔끔하게 전시돼 있었다. 실내 조명은 제품을 돋보이게 비추었고, 초록색 화초가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쇼룸만 찍는다면 쉽다. 셔터만 누르면 끝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메인 피사체로 놓고 찍어야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사람이 어둡게 나온다. 대부분 실내 조명이 제품 전시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작은 전시 조명들은 제품 주위만 비추고 있고, 나머지 공간은 살짝 어둡다. 인물이 들어가면 어둡거나, 전시 조명에 일부만 하얗게 뜨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우선 사람에만 별도 조명을 주는 방법이 있다. 스트로보로 빛을 비추되, 거칠지 않게 소프트박스를 씌워주는 방법이다. 그러면 얼굴이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잘 나온다.
그렇지만 이는 또다른 문제를 파생시킨다. 하나는 색온도다. 실내 조명과 스트로보는 색온도가 다르다. 형광등은 스트로보에 비해 푸르딩딩하고, 할로겐이나 전구는 누르딩딩하다. 실내광과 스트로보를을 섞어 쓰면 색이 균일하지 않고 제각각으로 나온다. 단색 벽이라도 스트로보가 닿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다른 색으로 찍힌다. 지저분하다. 피부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섀도우가 죽은 시체 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두 광원의 색온도를 맞춰야 한다. 보통 조명에 셀로판지 같은 색필터를 끼워 색온도를 조정한다.
또다른 해결책은 스트로보를 아주 강하게 쓰면 된다. 실내 조명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세게 말이다. 그러면 실내 조명 영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인즉슨, 원래 실내 조명이 연출하던 분위기가 싹 사라진다는 얘기다. (조명) 분위기가 좋아서 선택한 배경인데, 원래 분위기는 싹 사라져버린다니.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장에선 당황해 얼토당토 않은 결정을 내릴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똑같은 실수를 두세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똑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는 것 같다. 노하우란 그런 것 같다.

분위기를 살린 샷

이날 현장에서도 그런 해결책이 머리를 쓱 스쳤다. 그래서 일단 실내조명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안으로 가기로 했다.

먼저 테스트 촬영.

카메라 노출계가 가리키는 대로 찍었다. 별도 스트로보 없이.전체 노출이 맞지만, 실내등이 비추는 부분은 노출 과다다. 노출 과다는 되살리기 어렵다. 그래서 노출을 낮춰서 다시 찍었다. 앞쪽 전시대도 재배치했다.

좀 어둡지만 베이스로 깔아두기 좋은 노출이다. 무엇보다 노출 과다가 없다. 그 다음 스트로보를 켜서 인물 테스트샷을 찍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늙긴 했지만 쓸만하다. 응? 뭐가? 조명얘기로 돌아가자. 이 정도면 굳이 색필터를 끼지 않고서도 촬영이 가능하다. 예상대로 였다. 일단 실내조명이 (아마도) LED인데다 색온도도 주광 5500K에 근접하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공간이 좁고 흰색에 가깝다. 즉 스트로보 빛을 사방에서 반사시켜 전체 밝기를 올려주고 있다.

이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검정 소프트박스가 됐다. 화각 밖으로 빼기엔 공간이 너무 좁았다.

뺄 자리가 없었다. 이럴 땐 합성이 최선이었다. 조명 없이 찍은 사진을 하나 더 찍고 포토샵에서 덮어 씌우면 된다. 주의할 건 색온도나 밝기 등이 원래 사진과 차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명을 끄고 찍으면 색온도도 누르딩딩하고 밝기도 어두워진다. 가능한 조명을 키고 찍어야 한다. 다행이 조명을 멀리 뒷벽 쪽으로 밀어 넣을 공간은 있었다. 거기서 조명이 터지면 전체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합성용으로 쓸만하다. 그대로 놓고 인물도 찍으라고? 그러면 인물 우측 뒤통수를 비추는 꼴이라 얼굴이 어둡다.

화장품을 살린 샷

테이블 디스플레이를 완전히 마치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먼저 실내등만 사용한 사진.

다음은 스트로보 주등을 켰다. 위치는 사진 왼쪽 모서리 쪽, 숨겨져 있다.

좀 어두운 느낌이지만, 실제 촬영에선 나아질 거다. 조명을 보다 앞쪽으로 가져와 전체를 비출 계획이니.

그보다는 다른 문제에 신경이 쓰였다. 새로 배치시킨 선인장. 너무 어두웠다. 어느 빛도 가지 않고 있다. 새 조명으로 이를 비춰줘야 했다. 또다른 스트로보를 선인장 앞쪽에 위치시켰다. 직광을 때리면 그림자가 거칠테니, 분산광으로 줬다. 소프트박스나 우산을 쓸까 하다가 다른 방법을 썼다. 마침 반대쪽 벽이 멀지 않고 흰색이었다. 그래서 스트로보를 벽쪽으로 쏴서 선인장쪽으로 은은하게 반사시켰다. 세기는 -1 스톱 정도. 카메라 조리개가 f4이니 선인장 노출은 f2.8정도로 나오게 했다.

아래는 보조광만 켰을 때 모습

이 정도면 보조광 역할로 충분하다. 더 세지면 인물이나 전체 배경을 밝게해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두 스트로보를 모두 켰을 때 모습이다.

썩 맘에 든다. 조명 세팅 끝. 나중에 합성 이미지로 쓰기에 적합하다.

인물 촬영 시작.


다음은 배경 합성 전후.


나중에 컴퓨터로 보니, 전반적으로 살짝 어두웠다. 큰 문제는 아니다. 노출만 전체적으로 올려주면 끝.

다음은 구도 분석이다.

이미지 내 직선들이 한 방향으로 모이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빨간색으로 강조를 하지 않아도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무의식적 주목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런 선처리 혹은 선배치는 사진 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늘 나오는 얘기다.
또하나 파란선. 여백이다. 바짝 당겨 찍으면, 인물 비중이 커지고 임팩트도 높아진다. 그러나 잡지 사진에는 늘 여백을 줘야 한다. 편집자가 제목이나 글자를 얹을 수 있게 여지를 줘 찍어야 한다.

인물을 살린 샷

이 세팅에선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병훈 헉슬리 대표. 옷을 멋지게 입었는데, 대부분 화장품에 가려졌다. 그래서 한 장 더 연출했다. 전신이 다 보이는 사진으로.

이 대표도 긴장이 풀려 편하고 자연스런 표정, 포즈가 나왔다.

조명 배치는 이렇다.

밝기는 TTL이다. 밝기를 다시 맞출 시간이 없었다. CEO들은 바쁘다. 촬영 시간을 줄여야 한다. TTL은 시간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밝기가 오락가락할 때도 있지만, 이날 상황은 괜찮았다.

구도는 그렇지만 문제 투성이다. 사람 머리 뒤로 찬장 선이 가로 질러 가고 있고, 헉슬리 장식장은 위치가 애매하다. 선들이 인물로 효율적으로 집중됐던 첫 번째 사진에 비해 안정감은 떨어진다. 보조등도 너무 셌는지, 은은하던 분위기가 희석됐다.

현장에선 늘 실수한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실수한다. 새로운 걸 배우면 새로운 실수를 한다. 배우고 실수하고 복기하고. 배우고 실수하고 복기하고. 그렇게 반복하고 나서야 내 것이 된다. 노하우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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