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이는 대로 찍히지 않을까

흰백색 천으로 가슴을 가린 여인. 창문 너머 눈부신 그 모습은 누구라도 한 번쯤 찍어보거나 찍어보고픈 사진이리라. 그렇지만 소싯적 사진 좀 찍어본 사람은 안다. 생각만큼 녹녹치 않다는 걸.

우리 눈은 관용도가 넓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상황에서도 잘 본다. 커튼 너머 밝은 빛도 잘 보고, 어두운 실내의 모델도 잘 본다. 남자는 더 잘 본다. 가려진 곳마저 투시한다. 그렇지만 카메라는 관용도가 좁다. 밝은 빛에 맞추면 몸이 어둡게 보이고, 몸에 맞추면 하일라이트가 날거나 플레어로 뭉개진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당연히 투시도 안 된다. 이럴 땐 아예 실루엣으로 가거나 플레어를 활용해 찍곤 한다. 또는 반사판으로 섀도우를 올려주고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하는 방안도 있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적잖이 든다. 적어도 난 그랬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보이는 것처럼 찍히지 않는 걸까? 그 멋진 장면이 왜이리 평범해 보일까? 내가 조명 사진을 찍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서 비롯됐을 지도 모르겠다.

오늘 주제는 ‘아름다운 등’이다. 커튼의 화사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등쪽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 실루엣이나 플레어(디테일이 뭉개지는) 사진은 적절치 않다. 하일라이트와 섀도우 디테일을 모두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광과 스트로보를 함께 활용했다. 먼저 카메라 노출을 자연광에 맞춰 하일라이트 디테일을 살리고, 섀도우에는 스트로보를 비춰 디테일을 밝혔다.

메인 등은 머리 위에 뒀다. 얼굴 부분을 비추고, 몸 아래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어두워지게 했다. 빛이 주변부(커튼)로 퍼지지 않아야 했다. 자칫 커튼이 밋밋하게 나올 수 있다. 그리드를 끼워 빛을 퍼지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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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너무 어두웠다. 어깨 느낌은 나쁘지 않다. 빛 세기를 올리기 보단, 모델 얼굴이 빛을 더 받도록 재배치해야 했다.

탑조명은 그대로 둔채, 모델 위치를 바꿨다. 모델이 소프트박스 중앙부를 벗어나 테두리쪽으로 서게 했다. 모델 얼굴을 비추는 소프트박스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져 빛이 더 들어가고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보조등을 등 뒤로 더해 어두운 부분을 받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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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조명은 나아졌다. 반면 등쪽 보조등은 너무 밝다. 그리고 커튼이 다소 어둡다. 초점은 전체적으로 너무 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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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속도를 한 스톱 낮춰 자연광이 좀더 밝아지게 했다. 그리고 아웃포커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조리개를 한 스톱 열어줬다. 이에 맞춰 조명 세기도 조절해주었다. 탑조명도 살짝 얼굴쪽으로 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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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드러났다. 얼굴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들락거렸다. 위 사진도 머리카락 그림자가 얼굴을 어둡게 해, 포토샵으로 지워야 했다. 전반적인 대비도 좀 밋밋한 느낌이다. 아예 메인 조명을 바꿔볼까.

탑조명에서 사이드 조명으로 옮겼다. 메인 등을 카메라 왼쪽, 모델 앞 왼쪽에 뒀다. 모델이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뒀다. 마찬가지로 소프트박스 방향을 틀어, 센터가 아닌 테두리가 모델을 향하도록 했다. 영어권에선 feather한다고 하는데, 우리말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등쪽 보조 조명을 끄는 대신 반사패널을 더욱 모델에 가깝게 재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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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가까이 한 덕에(그리고 보조등을 끈 덕에) 컨트라스트가 더욱 강해졌다. 생동감이 더욱 돈다. 그렇지만 얼굴은 대비가 너무 세, 포토샵으로 살짝 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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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보니, 탑조명으로 찍은 사진이 좀더 낫다. 빛이 부드러워 전체적 느낌과 잘 어울린다. 표정도 살아있다. 그렇지만 오늘의 주제는 ‘아름다운 등’. 최종 컷은 등을 살린 나중 사진으로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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